본문 바로가기

영화

50가지 그림자: 해방, 그레이의 퇴폐미가 사라진 이후


 

3부작의 마지막 편이라면 이전까지 쌓아왔던 내용을 해소해주는 게 당연한 도리이다. 하지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그 도리마저 저버린다. 내용이 어떻게든 이어지긴 하지만, 2편까지 참고 봐준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는 결코 주지 않는다. 그게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?

 

 

우선 엘리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. 2편에서 엘리나는 둘 사이에서 저주를 퍼붓고 퇴장한다. 그레이는 결코 '정상적인' 아나스타샤 같은 여자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말이다. 그러면 여기서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는 의문이 생긴다. 그레이 같은 이상성욕자가 과연 아나스타샤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이 가능할까? 그렇기 때문에 3편의 첫 장면부터 나오는 두 사람의 결혼 장면이 의미가 있고 긴장감이 있는 것이다.

 

 

하지만, 3편의 주된 갈등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아니다. 2편에서 등장했던 잭 하이드의 복수극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. 그래도 그레이의 특이성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이 조금은 있지 않았을까? 그런 거 전혀 없다. 그레이의 이상성욕은 이미 아나스타샤라는 완벽한 여자가 나타나서 다 치료가 됐나 보다. 영화에서는 특이성으로 인한 긴장감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.

 

 

그러면 이제 의문이 생긴다. 왜 애초부터 그레이를 극단적인 사디스트로 설정을 해 놓은 것인가? 그저 성적인 환상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인 것인가? 실제로 그레이의 이상성욕은 영화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. 그게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되거나, 그레이의 내적갈등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. 그리고 2편부터 시작해서 3편에 다다르면, 더이상 그레이는 사디스트가 아니라 그냥 스윗가이가 된 것 같다.

 

 

또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대개 외부 사건에 의존한다. 2편에서는 예전에 그레이의 과거 파트너였던 상대가 스토킹을 하거나, 3편에서는 잭 하이드가 복수를 하거나 하는 경우이다. 그렇게 둘 중 한 사람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, 그로 인해 서로 사랑한다고 부둥켜 안는 게 전부이다.

 

 

예술과 외설 사이에는 항상 논란이 가득했다. 왜냐하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. 어떤 판사의 말 마따나, 예술과 외설의 기준은 제시할 수 없지만, 보면 안다 라고 했다. 나는 이 논리로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.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예술은 아니다. 그럼 외설일까? 첫 1편에서는 외설의 기능을 작용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, 3편까지 가자 그 기능마저도 상실한 것 같다.